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왕표 사망 찬란했던 마지막 프로레슬러

한국프로레슬링을 떠올리면 70년대 박치기 하나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내세운 박치기왕 김일과 그의 스승 역도산을 생각하지만 현대에는 이왕표가 그 바톤을 이어받아 영광을 재현했습니다. 후계자 양성에 실패 후 국내프로레슬링이 과거의 영광을 찾지 못한채 담낭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사망을 합니다.



이왕표는 190cm, 몸무게 120kg의 거구로 60년대 박치기 하나로 악당을 물리치는 김일에게 반해 태권도, 유도 등으로 어린시절부터 몸을 단련 후 1975년 김일 도장 1기생으로 지원하며 그의 제자가 됐습니다. 


김일은 대한민국 프로레슬링이 성업을 하던 70년대 일본으로 밀항해 역도산의 제자가 되어 갖은 고초끝에 박치기를 필살기로 일본을 너머 전세계적으로 프로레슬링 열풍을 일으킨 주역입니다.



한국프로레슬링 대부의 제자라는 타이틀만큼 이왕표는 90년대 초반까지 역대급 전무후무한 기록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 합니다. 나는 표범이라는 별칭처럼 190cm 거구가 공중부양 하듯 치솟아 드롭킥을 날리는 통쾌함은 그의 필살기와도 같았습니다.



이왕표는 젊은시절 그의 스승 김일의 뒤를 이어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며 상당한 유망주로 손꼽혔으나 그가 한국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하며 8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몰락시기를 맞이합니다.


한국 프로레슬링이 GWF로 흡수되면서 그 자신의 커리어는 점점 위상을 떨쳐내지만 그와 반대로 국내 프로레슬링은 점점 그 영향력을 잃어가는데요.



방송의 영향력을 깨닭았던 이왕표는 노지심 등 후배들과 함께 무한도전, 슈퍼선데이 등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시들어가는 한국프로레슬링에 불꽃을 틔우려는 시도도 해보았습니다.



김일의 제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80년대에는 NWA 오리엔탈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 드래곤 스페셜 킥, 파워킥 등의 주특기로 세계 챔피언 타이틀까지 거머쥐는데요. 전 프로레슬러 부거 티가 유명세를 얻기전 그마저 꺾으며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게됩니다.



이왕표는 60세가 가까워질 즈음 은퇴를 준비하려 했으나 그보다 앞서 2013년 담도암 3기 판정을 받았는데 수술로 완치 가능성이 절반도 되지 않아 그의 투병 소식은 이내 빠르게 퍼져갔습니다.


수술로 인해 암이 전이된 담낭과 쓸개, 췌장을 3분지 1을 제거하고 나니 120kg의 거구가 79kg까지 살이 빠지며 병마와의 투병이 집중 조명되며 그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결국 투병 중 2015년 5월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거행하며 40년간의 이어온 프로레슬러 삶을 내려놓게 됩니다.



고령의 나이 희박한 생존률의 수술과 투병 끝에 이왕표는 완치판정을 받게되며 꾸준한 건강을 관리해 왔습니다. 한때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항암치료와 항암식단을 공개하며 담도암을 이겨낸 그의 또다른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왕표는 항암음식 요리 전문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가 했지만 담도암이 재발하며 투병 중 끝내 사망하게 됩니다.



한국프로레슬링에 있어서 90년에 들어서며 그 전성기는 잊혀져 갔지만 이왕표는 세계무대를 휩쓸며 그 자체로는 스승의 위업을 압도할만한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김일에서 이왕표로 세대가 이전하며 그 자신의 커리어는 대단했을지 몰라도 후배 양성 실패와 한국프로레슬링 몰락이라는 책임감은 안아야 했습니다.



프로레슬링이 각본있는 시합이라는 세간의 평과는 달리 실전 격투기가 현대 스포츠 중심에 서며 외면할 때도 이왕표는 끝가지 실전 시합이었다고 주장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