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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파킨슨병 별세

김홍일 파킨슨병 별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3선 의원이며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다가 72세로

자택 안방에서 돌연 별세 했다

자택 관리인에 의해 쓰러진채 발견된

김홍일은 구급대원의 심폐 소생술 이후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 됐으나

오후 5시 4분 숨을 거뒀다

 

15대 16대 국회의원 활동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가

17대 국회의원 선거 무렵 파킨슨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미국을 오가며

수술을 받아야 했고 여기에 당뇨에

합병증까지 겹치며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김홍일의 파킨슨 병은 55세 이후에 나타나는

증세가 아닌 1971년과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중앙정보부 조사기관에

끌려가 극심한 고문 끝에 신경계통을 다쳐

다리르 절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심각한 후유증 이후에 파킨슨병이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으로 인해

고초를 겪은 큰 아들에 대한 관심과 죄스러움

때문에 아들의 국회의원 출마는 언제나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해준것도 없이 평생을

고통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막을 수

없다 라며 측근의 조언마저 무시했다

 

3선 의원에 당선이 됐지만

나라종금로비 사건에 연루 되면서 인사청탁

대가로 1억5000만원을 받은 것에 대해

유죄판결 후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형제들 모두가 줄줄이 비리 의혹에 연루 되고

피폐해진 심경에 몸까지 점점 상태가 악화돼

주변 걱정어린 시건을 받을만큼 쇠약해졌다

 

김홍일의 상태가 어느정도로 악화가

됐냐하면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37일 투병기간 동안 세 번 방문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아들의 병세가 좋아져서 병문안을 왔다는

소식에 희미하게 미소를 띠울 정도였다

 

아버지의 영정에 꽃 한송이를 바치기

위해 움직이던 팔의 떨림에서 꽃 한송이

무게조차도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던

모습에 주변사람들도 안타까워 했다

 

전문가는 김홍일의 모습에 대해

파킨슨병의 형태와는 다르다며

파킨슨 플러스 증후군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을 한다.

 

파킨슨 병 자체가 말을 잘 못하지는 않는다

멍한 느낌으로 입이 벌어지고 말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봐서는 파킨슨 플러스 증후군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파킨슨 병이란

정상인의 뇌에서 흑색질이라는 부위의 신셩

세포들이 소실되면서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부족이 생기는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손이 떨리거나 잘 걷지 못하는 등의 운동장애다

치매와 달리 약물 치료만 적절히 이뤄지면

95% 이상이 반응한다

 

파킨슨 플러스 증후군이란

숨골 있는 부위가 점차 망가지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치매까지 오게 된다

몸의 대칭으로 오며 운동느림증과 경직

등이 주요 증상으로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해

보행장애를 일으킨다

 

파킨슨병과 달리 떨림증상은 없고

도파민성 약물을 복용해도 반응이 거의

없어 치료가 더 힘들다고 한다

 

권투선수처럼 외상을 자주 입은

사람에게 많이 생기는 질명이기 때문에

고문을 할 때 머리를 많이 때렸다면

생길 수 있다고 가능성을 내다봤다

 

김홍일은 1948년 1월 전남 목포 태생이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공군장교로

복무했으며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 되면서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응시권이 박탈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자용애 여사의 아들이며

장남 아래 김홍일, 김홍업과 이희호의 아들

김홍걸이 차례로 있다

 

결혼은 1975년 독립운동가 윤경빈의 장녀

윤혜리와 결혼했다. 세명의 딸이 있으며

가족이 지켜보지 못하는 상황에 자택에서

갑작스레 별세를 하면서 그 안타까움이

더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