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영규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일반인 여성과 네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가족과 지인 30여 명에게만 청첩장을 돌려 비공식으로 조용히 예식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어요.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극단에서 연기자로 활동하며 무명 생활을 견뎌왔던 박영규는 오태석 단장이 찬단한 극단 목화의 창단 멤버이다. 연극배우로서 7년이라는 세월 뒤에 얻어진 명예였다.
박영규 첫 번째 결혼
극단 생활은 늘 굶주림과 지독한 생활고의 연속이었다. 결국 폐결핵까지 얻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는데 당시 같은 무대에 섰던 대학 후배와 인연이 닿게 되고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박영규가 폐결핵으로 힘든 시기에 2년간 보살핌과 처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하지만 워낙 궁핍한 살림살이여서 결혼 후에도 처가 문턱 밟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아들을 얻어 애를 안고 찾아갔는데도 문전박대를 당했다. 연극무대 입단 7년만에 MBC 특채 탤런트로 합격하면서 연극무대를 떠나게된다.
드라마 데뷔와 함께 88년작 '내일은 잊으리'에서 여자 주인공을 묵묵히 지켜주는 캐릭터로 제대로 이름을 알린다. 인기에 힘입어 카멜레온이라는 음반까지 발표하는데 주부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낸다. 형편이 나아지고 박영규 스스로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되지만 부부 관계에 있어서 위기를 맞이한다.
박영규 첫 번째 이혼
바쁜 스케줄과 그로인해 가정에 소흘했던 탓일까 1995년 부인이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며 이혼까지 하게 된다.
박영규 두 번째 결혼
첫 번째 결혼 실패 후 이혼 1년만인 97년 세 살 연하의 의상 디자이너 최경숙과 재혼한다. 그리고 잠시 침체기에 빠져있던 배우 인생에 전환기를 맞는데 98년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미달이 아빠 캐릭터를 맡게 되면서 코믹 캐릭터 변신에 제대로 성공한다.
이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라이터를 켜라 등 출연 작품마다 빅히트를 기록하고 미달이 아빠 특유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인생 캐릭터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
박영규 두 번째 이혼
두 번째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일 년 만에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오면서 잘나가던 의상 사업도 그만두게 된다. 이후 박영규의 극진한 간호가 계속됐는데 결국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다.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나 암투병 하던 아내가 건강할 때도 아내 노릇 제대로 못했는데 마음편히 투병하고 싶다라며 이혼을 선언한다.
박영규 아들 사망
아픔을 딛고 신귀공자, 똑바로 살아라, 다모 등 방송 삼사 대작 드라마와 시트콤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연기인생의 정점을 찍으려던 찰나 2004년 3월 미국에서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박영규는 충격으로 방송 스케줄을 정리해 필리핀으로 떠난다.
박영규 세 번째 결혼
한국에서의 힘든 시기를 정리하고 방송 활동이 아닌 사업가로서 모색하기 위해 필리핀에 골프장을 차린다. 당시 매체에서는 박영규와 재혼한 여성이 대기업 회장의 전처라고 알려졌으며 골프장 운영과 더불어 리조트 사업까지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영규 세 번째 이혼
순항할 것 같았던 필리핀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필리핀을 떠난지 5년만에 가발 업체 밀란과 계약하면서 모델로서 복귀를 한다. 이후 꾸준한 방송 활동을 하다 2014년 사극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할을 통해 그해 장편 드라마 부문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한다. 필리핀 사업 문제 이후 이혼 후 한국 방송으로 복귀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박영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결혼 소식이 전해져 주취의 축하 말을 많이 듣고 있지만 몇몇 안좋은 말도 있었다며 심경을 드러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됐고 조그마한 사업을 운영하는 여성이라고 밝혔다. 신혼 여행은 출연중인 촬영이 끝나 시간이 되면 여행이라고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